Layers of Time 시간의 겹

본화랑은 6월 25일부터 7월 17일까지 실리콘과 필름을 재료로 독특한 회화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임동훈 작가의 개인전 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임동훈 작가는 최근까지 진행해오던 작업들과는 다른 재료와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전 작품에서는 캔버스 위에 잉크 방울로 촘촘히 찍힌 무수한 점들이 우주를 연상시키는 듯한 광활한 흐름으로 압도적 풍광을 만들어냈다면 원형 필름을 사용한 새로운 방식의 작업에서는 함축적이고 압축적 형태를 통한 미시세계의 움직임이 신비롭게 드러나고 있다. 이전 작업과 최근의 작업은 언뜻 그 사용 매체와 형태적 차이로 인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작가의 자연의 섭리에 대한 본질적 탐구와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그는 거대하고 역동적인 움직임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연 현상들을 관심있게 관찰하고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이치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한다. 


작가는 원형의 필름을 층층이 번갈아 쌓으며 그 사이를 실리콘으로 밀착시키는데, 반복적으로 축적된 필름은 한눈에 포착되지 않고 표류하는 듯하며 시작과 끝이 모호한 형상을 드러낸다. 겹겹의 필름이 만들어낸 요동치는 듯한 미묘한 흐름은 꿈틀거리는 태동의 움직임과 동시에 흩어지며 사라져가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비가시적 자연의 현상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듯 보인다. 


한편, 실리콘이라는 재료는 작가가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고 실험해온 예술 매체이다. 회화에서 흔히 쓰이는 재료는 아니지만 작가는 실리콘의 독특한 특성에 주목하며 회화적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투명하고 물렁한 촉감을 가진 실리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표현함에 있어 적합하다. 작가는 관념적 개념인 시간을 점액질 같은 이 물성을 통해 공감각적으로 가시화한다. 비정형적이면서 유동성을 갖는 실리콘은 시간에 공간감을 결부하여 시간 개념을 시각적, 촉각적 감각으로 인지하게 한다. 실리콘을 통해 공간화된 시간의 층위는 기저까지 투명하게 투시되어 모든 행위들의 전 과정을 담으며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드러낸다. 


이처럼 물질적 탐구로부터 시작되는 작가의 작업은 그의 내면과 표현 욕구를 최소화함으로써 재료와 형태의 고유한 특성에 관심을 두게 하는데 이는 단순한 도형과 재료만을 사용하여 주관적 감정과 이념적 표현을 절제하는 최소주의 개념으로도 접근이 가능해보인다. 반복적으로 나열된 원형 필름의 구조적 단순함과 표면에 입혀진 무색의 실리콘은 색채와 형태면에서 극도로 절제되어있으며 재료의 물질성과 간결한 조형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개인적 심상이나 감정을 배제하고 자연의 순수한 진리를 추구하는 작가의 관점과 태도와도 연결된다. 그는 어떤 행동을 취하기보다 마음의 동요없이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고 피상적인 현상 이면에 있는 본질과 원리를 파악하고자 한다. 대상을 향한 주관적 개입보다 관조적인 태도에서 기인하는 임동훈 작가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는 풍부한 감성이나 화려함 없이 건조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자극적이지 않기에 보면 볼수록 고요하고 차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필름과 실리콘으로 여러 층을 포개어 올리며 기다림과 인내로 창조된 작품은 그 오랜 과정이 담긴 시간의 층과 결을 간직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임동훈 작가의 작품을 통해 시간의 겹으로 쌓인 밀도와 압축적 깊이감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울림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