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NUNCHI

전시소개




'눈치'는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원하는 걸 이해하는 거예요. 감각적인 지능이랄까. 상대의 기분을 알아내는 건데, 물어보지 않고도 알아내는 거예요."


영화 <#아이 엠 히어> 속 배두나는 눈치가 없는 알랑 샤바에게 프랑스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눈치'에 대해 설명하느라 애를 먹는다. 눈치가 없는 사람에게 '눈치'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어렵지만, '눈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더욱더 힘든 것이다.


애초에 '눈치'라는 단어는 한국어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다른 단어로 번역하기에는 꼭집어 마땅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눈치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 속 배두나처럼.


하지만 '눈치'라는 단어가 없는 외국이라 하더라도 분명 눈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는가가 조금 다른 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여도 어렴풋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눈치가 있다면 더욱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언제나 새로운 것을 탐하는 파비앙 베르쉐르 작가에게 프랑스어로 번역할 수 없는 단어를 알았을 때의 기분은 '이상함'보다는 '신기함'이었다. 분명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작가는 느끼고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해 보려 한다.


프랑스 컨템포러리 아트씬을 대표하는 파비앙 베르쉐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작가가 실제로 본 것, 영화나 책에서 본 상상적인 캐릭터, 혹은 꿈속에서 만난 몽환적인 형상들이 그의 손끝에서 그만의 스타일로 재해석되어 캔버스 화면을 채워나간다. 그들 사이에는 유기적인 연결성이 있고 그로 하여금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완성된다. 각자 나름의 사연을 굳이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함께 있음으로 눈치껏 서로를 이해하고 그렇게 또 하나의 스토리가 탄생하게 된다. 프랑스어로 번역할 수 없는 '눈치'라는 단어를 듣고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번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는 눈치껏 관객이 바라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나타내려 하였으며, 관객에게는 눈치껏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언뜻 어지럽게 정신없이 화면을 채워나가기만 한 것 같은 그의 아이템들 속 그들만의 이야기를 찾아보며 작가의 의도를 눈치껏 이해하였기를.


- 박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