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and Front




기존의 관념, 사고, 형식을 바꾸는 일은 어떤 것을 처음 시작하는 일보다 더 많은 창의성을 요한다. 예술가에게 창조란 하루아침에 번뜩이는 새로움을 좇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전의 방식을 반추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는 작가 고유의 독특한 감각, 인내심, 고뇌의 시간이 긴밀하게 요구된다. 김종규 작가는 비단과 먹으로 수묵화를 그린다. 사실, 오랜 역사가 있는 수묵화에 현대적 맥락과 부합하는 새로운 해석과 표현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또한, 비단과 먹과 같은 강한 전통적 특성을 지닌 매체는 그 고유성과 정체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재료적 한계나 표현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종규 작가는 전통 매체의 특성과 물성에 대한 연구와 그 관계성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주제와 표현 방식에 있어 현대적인 접근 방식을 계속해서 모색해왔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그의 작업은 전통성에 갇히거나 양식화된 틀에서 반복 생산되는 작품들과는 구분되며 언제나 새로움을 준다. 



본화랑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을 맞은 김종규 작가는 기존과는 다른 시도의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이전까지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자연 형상을 그려왔지만, 줄곧 사실적 표현 방식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왔다. 이번 신작은 세밀하고 섬세한 묘사에서 단순한 면 분할의 비구상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전환은 사실적 묘사가 주는 시각적 한계를 넘어 표현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시도로 해석된다. 작가는 복잡한 형상의 단순화와 과감한 생략을 통해 순수한 조형 세계를 탐구하며 사유가 깃든 깊고 명료한 풍경을 그려낸다. 



보는 대상이 단순할수록 우리의 사고는 자유로워진다. 복잡한 잡음은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단순함은 우리의 사고를 해방시킨다. 단조롭게 흐르는 먼 산을 바라보다 어떤 생각에 잠길 때면 그 순간 렌즈의 초점을 잃는 것처럼 주변 사물이 흐릿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번잡한 시각 작용이 멈출 때 비로소 우리는 내면의 생각으로 몰두할 수 있게 된다. 김종규 작가는 자연의 단순한 조형성에서 경험되는 사색과 몰입을 기반으로 사유적 풍경의 시각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는 우거진 수풀이나 울창한 숲과 같은 자연의 부산스러운 형상을 걷어내고, 단색의 면들을 분할하고 겹치는 방식으로 화면을 조성하여 마치 먼 산맥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연출한다. 담백한 형태의 함축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산된 주의를 떨쳐내고 내면으로부터의 깊은 몰두와 사색의 행위에 집중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김종규 작가의 신작인 Part of Memory는 기억에 대한 표현으로 자연에 대한 인상과 기억들을 토대로 재구성된 작업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기억은 전체적이고 완전한 형태로가 아니라 부분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을 기억하는 방식 역시 하나의 온전한 풍경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크고 작은 인상들의 합(合)으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비단의 앞면과 뒷면에 번갈아 그린 단면들을 겹쳐놓으며 자연에 대한 부분적 기억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통합한다. 반복과 대조의 방식으로 재구성된 화면은 실제적 풍경이 아닌 기억의 세계에 존재하는 가상의 공간으로, 이 가상 이미지는 결국 실제 자연이 아닌 자연을 향한 감상자의 사색, 사유, 감정의 기억들이 복합적으로 레이어를 이룬 풍경이라 할 수 있다. 김종규 작가는 내면에 축적된 기억들을 종합하여 자연을 재구성함으로써 구체적 실체를 초월한 깊고도 아득한 사유적 풍경을 창조한다.